
It's your special day
It's a special day (side.G) - (2015)
(side.Y)
↑합작글로 이어집니다.
초침은 한 칸씩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 번. 또 한 번. 일정하게 움직이는 초와 초 사이의 간격에 맞추어 야마모토는 불안한 감정을 한 겹씩 더 쌓아간다. 짧은 시간들 사이에서 더해지는 감정은 수백 가지도 넘었다.
아직일까. 아닌데. 끝났을 텐데. 혹시라도 무슨 일은…. 아니. 아닐 거다. 그런 생각은 말자.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다. 방 주변을 왔다 갔다 하다 또 한 번 가슴을 진정시키려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어질러진 잡동사니들은 이미 마음먹고 말끔히 치워놓았다. 고쿠데라는 여섯시에 온다고 했다. 늦을 수도 있다고는 했지만. 야마모토는 또 한 번 시계를 봤다. 시침이 8을 넘어선지 오래다. 분침마저 조금 전 6을 가리켰다.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 하교시간 헤어질 때 고쿠데라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곧 그만둔다. 일이 있으니 전화해도 못 받는다고 했다. 대체 어떤 일이기에 저녁도 한참 넘어선 시간까지 끝나지 않은 걸까. 호기심은 점점 미심쩍은 감정을 동반했다. 그리고 그건 전부 초조함과 한숨 섞인 걱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그래도 안 오면 나가봐야지. 그때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고쿠, 아…. 츠나.”
목소리에 실망한 기색을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사와다 역시 고쿠데라를 찾고 있다 했다. 야마모토의 집에 들르기 전 만나기로 약속한 모양이다. 창문을 열어 주변을 둘러본다. 이미 캄캄해진 저녁에 동네의 모습이라고는 어둠에 물든 건물들 일부분뿐이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야마모토는 휴대폰을 끊자마자 구석에 세워둔 죽도를 들고 뛰어나갔다.
*
학교엔 없었다. 길거리에도 상점가 쪽에도 고쿠데라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옆 동네로 이어지는 골목 근처를 뛰어가던 중 요란한 소리가 들려 멈춰 섰다. 이제 막 전투를 끝낸 모양이다. 터져버린 폭탄들의 잔해가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숨을 고르는 고쿠데라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앞에 검정색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무더기로 쓰러져 있는 걸 보고서 야마모토는 급하게 그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었다. 괜한 참견 하지 말아. 고쿠데라는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왈칵 화가 난다. 어깨를 쥔 손가락에 정말 도드라진 뼈의 형태만 만져졌다. 무섭다. 무서워서 무서운 게 아니다. 눈앞에 있는 이가 꼭 야마모토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있으면서 왜 혼자 왔어?"
"혼자 오는 게 당연하잖아. 네놈과 무슨 상관이야."
무슨 상관이냐고. 야마모토는 고쿠데라의 말을 곱씹기 전에 왜 그렇게 뛰어다녔는지를 먼저 떠올렸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그의 생각을 얼마나 했던가. 처음엔 언제 올지 몰라서 걱정하고 초조했던 생각들 말고라도 어떤 것들을 떠올렸는가. 짧은 시간 순간순간 바뀌던, 끝없이 떠오르는 고쿠데라의 얼굴이 그렇게도 눈앞에 어른거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눈 한번 깜빡일 때마다 그 순간이 온통 고쿠데라로 점철되어 있는 걸 어떻게 고백할 수 있을까.
오늘만큼은 기필코 말하리라 결심했던 날이었다.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드는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다고 느껴지는 날, 바로 네 생일이라고. 너를 축하하며 오랜 기간 고민했던 속내를 꺼내 보이겠다고 다짐한 오늘이었다. 두근거림과 설렘 속에 불안함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솔직하고 싶었다. 준비 한 케이크를 보여주며 생일 축하한다고 웃어주고 싶었다. 이제 너무 어렵고 험한 일들은 내가 걱정이 되니까. 조금만 덜 걱정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차라리 옆에서 내가 지켜주면 안되겠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아주 짧은 순간. 예를 들면 고쿠데라가 손에 들고 있던 폭탄을 던지는 그 순간. 반지에서 우리와 지로가 나오기까지의 그 사이. 눈 한 번 깜빡거릴 정도의 짧은 시간. 그 사이에 어쩌면 고쿠데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하고 싫었으니까.
"난 걱정했는데."
혹시라도 사라질까봐. 다칠까봐.
고쿠데라가 가만히 야마모토의 손을 쳐낸다. 가느다란 손가락엔 이미 담배 한가치가 들려 있었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담배 연기가 길게 야마모토의 얼굴위에 덮인다. 쓰러진 무리들의 움찔거리는 움직임이 문득 두려워졌다. 야마모토는 급하게 고쿠데라의 손목을 잡았다. 일단 가자. 어디로. 우리 집에. 아…. 간다고 했었지. 기다렸냐.
그 얼굴에 미소가 걸리니 더 화가 났다. 혼자 여유로운 척, 어른인 척. 아무것도 아닌 척 하는 게 눈에 다 보이는데 억지로 그렇게 보이려는 게 화가 난다. 마피아 놀이가 다 뭔지 모르겠다. 야마모토는 그가 언제나 위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고 불안하지 않도록 곁에 있고 싶다. 지켜주고 싶다.
고개를 숙여야 고쿠데라를 전부 끌어안을 수 있다. 야마모토가 들고 있던 죽도는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내 고쿠데라의 손끝에 걸려있던 담배도 툭 떨어져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품 안에 들어찬 몸이 뜨거웠다. 조금 전 격렬했던 전투 탓이리라. 고쿠데라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잔뜩 떨리는 팔에 기대어 왔다.
"쓸데없는 짓이야."
"진짜야. 난 항상 네가 걱정 돼."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야마모토는 느낄 수 있었다. 잠시간의 머뭇거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야마모토는 고쿠데라를 두른 팔에 더 힘을 주었다. 틈 하나 허락하지 않고 꽉 들어찬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있으면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그를 놓칠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그간 몇 번이나 고쿠데라를 놓쳤던 일들이 있었다.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모르는 패밀리에게 기습공격을 당한다든지, 납치를 당한다든지 문자 그대로 사라졌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야마모토는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거창하게 그를 지켜주겠노라 말하고 싶었지만. 정말로 지켜줄 수 있을까. 야마모토는 아직 어렸다. 그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속이 상한다. 어찌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이. 그리고 이런 간절함을 몰라주는 고쿠데라의 모습에.
"있잖아. 지금이라도 우리 집에 갈래? 보여줄게 있어."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 야마모토를 고쿠데라는 밀쳐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그를 이끌고 한 발 앞서 나가는 야마모토의 발걸음에 망설임이 점차 사라졌다. 고쿠데라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야마모토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붕 떠버린 적막감은 늘 있어왔다. 그래도 그게 어색하지 않았다. 뒤돌아보자 고쿠데라가 뭘 보냐고 퉁명스럽게 물어왔다. 조금 다행이었다.
야마모토는 그제야 집에 있는 케잌이 녹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돌아가면 긁힌 상처들을 치료해 준 다음 케잌에 불을 붙여주겠노라 다짐한다. 그리곤 조용하게 찬찬히 말을 나누고 싶었다. 놀이에 목숨 걸지 말아달라고. 더 소중한 건 너라고. 그렇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어쩐지 상상이 가는 바였다. 그럼에도 마주본 시선 속에 고쿠데라의 표정을 담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다시 야마모토의 입에서 슬금슬금 웃음이 났다.